미국 체성분 분석기 시장 80% 점유한 인바디 차기철 대표
주간동아
병원이나 헬스장에서 발바닥이 그려진 기계의 발판 위에 올라가 양손으로 막대를 잡고 1분 정도 선 상태로 몸의 지방·근육·수분량 등을 측정해본 경험이 누구나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체성분을 측정하는 검사인데, 일명 ‘인바디’로 불린다. 인바디(InBody)는 원래 체성분 분석기 브랜드이자 회사 이름이지만, 이제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체성분 검사의 보통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인바디를 개발한 차기철 인바디 대표이사는 연세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 기계공학 석사, 미국 유타대에서 생체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공학도 출신이다. 하버드대 의과대학 박사 후 과정을 밟던 중 읽은 체성분 분석 기술에 관한 논문 한 편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논문을 통해 체성분 분석이 의학적으로 왜 중요한지, 그 배경이 되는 기술적 내용은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침 당시 한국에서는 이른바 ‘물 먹인 소’가 사회문제가 된 터라 인체 성분 분석에 더 큰 호기심과 흥미를 느껴 연구에 돌입하게 됐다.
1996년 인바디를 설립해 1년 3개월 만에 체성분 분석기 인바디를 세상에 선보였고, 1998년 IR52 장영실상, 2012년 과학기술훈장 웅비장, 2019년 백남상 공학상, 2021년 상공의 날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2022년에는 IR52 장영실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차 대표이사는 꾸준히 연구에 매진해 지금까지 논문 20여 편을 발표했고, 80여 건의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인바디는 체성분 분석기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으며 세계 110개국에 수출된다.
차 대표이사는 자신을 성공한 사업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보통의 엔지니어가 자신의 생각대로 기계를 만들고 그 기계를 세계인이 사용한다는 점에서 ‘성공한 엔지니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를 성공으로 이끈 밑바탕에는 공대생 특유의 집념과 끈기가 자리 잡고 있다. 얼마 전에는 자신을 포함한 7명의 기계공학과 출신 리더의 성공 스토리를 담은 ‘공대력’(열린책들)을 펴냈다. 차 대표이사를 2022년 12월 26일 서울 강남구 인바디빌딩에서 만나 그의 삶과 성공을 집약하는 ‘집념의 힘’에 대해 들어봤다.
‘체성분검사=인바디’로 불릴 만큼 인바디는 세계에서 신뢰받는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과 일본, 유럽, 중국 등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으며 세계 약 110개국에 수출 중이다. 천안공장에서 생산되는 인바디의 90%가 수출된다. 지난 25년간 약 20%씩 성장해 2022년 1600억 원 정도 매출이 예상된다. 미국 체성분 분석기 시장의 80%가 인바디 제품이고, 야구단과 농구단 등 스포츠업계도 3분의 2가량 점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거래처는 미국 프로농구 명문 구단 LA 레이커스다. 제품 납품을 위해 5년간 공들였는데 미국 스포츠업계에 인바디가 자리 잡는 발판이 됐다. 또한 미국 대학 교과서에 체성분 분석 방법으로 인바디가 게재되기도 했다. 체성분 분석기를 한국보다 먼저 만든 일본에서도 인바디의 우수성이 널리 인정받고 있다. 병원 대부분에서 인바디를 사용 중이고, 체성분 분석 논문 대다수도 인바디 자료를 활용한다.”
최근 출시한 ‘인바디 BWA2.0’은 세계 최초로 3㎒ 고주파를 사용해 인체 내 총 수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어 화제다.
“우리 몸에서 수분은 60%를 차지한다. 신장병, 심장병 등 수많은 질환과 관련됐을 만큼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인체 수분을 측정하는 의료기기는 없었다. 인바디의 BWA는 인체 수분을 측정하는 유일한 기계로. 현재 한 해 약 1000편의 관련 논문이 출간될 만큼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도 BWA가 임상연구에 많이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세계 최초로 3㎒ 고주파수를 체내에 안정적으로 흘려보내 측정도를 높인 체성분 분석기 ‘InBody970’. [인바디 제공]
내성적이고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자평했는데, 성공하는 리더가 될 수 있었던 원천은 무엇인가.
“최고경영자(CEO) 중에는 나서는 성격도 있고, 은둔형도 있는데 나는 후자에 가깝다. 성공한 CEO가 가진 특징은 마음에 품은 꿈, 이루고 싶은 절실함, 그것에 도전하는 순수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나는 열등감에 시달렸다. 동생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수재였고 누나 역시 전교 1, 2등을 다툴 만큼 공부를 잘했다. 중학교 입학 당시 내 성적은 전교에서 3분의 1 정도에 속할 정도로 평범했다. 나중에는 열심히 공부해 전교 11등을 할 만큼 성적이 올랐지만 당대 최고 명문고 입시에서 떨어져 인생에서 처음 실패를 맛봤다. 미국 유학 생활 초기 2년 역시 박사 입학자격시험에서 떨어지고 지도교수도 정하지 못해 좌절을 겪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좌절과 절박한 심정이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실패로부터 떠안은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좀 더 끈기 있는 사람이 되게 했고, 그 집념의 힘으로 전진해 하나하나 성공을 쌓으며 지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최근 출간한 ‘공대력’에 이러한 성공 스토리를 소개했다. 책 제목이기도 한 공대력이란 무엇인가.
“나를 포함해 책을 공동 집필한 7명은 모두 연세대 기계공학과 출신으로 ‘연세 기계 CEO포럼’ 구성원들이다. 그간 ‘후배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장학금 지원이나 특강 등을 진행하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을 정리해 책을 발간하게 됐다. 우리 모두 20대 때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와 미래에 대해 무척 고민했다. 20~30년이 지나 각자 사업 분야에서 성공한 CEO로 일하며, 혹은 대기업에 근무하며 최고 자리에 오르기까지 20대를 뒤돌아보면서 당시의 방황과 혼란, 의문과 현재의 성공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진솔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공대력이란 한마디로 공대생이 훌륭한 엔지니어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내공 같은 것이다. 새로운 기계를 완성하려면 자신만의 독특함,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자신이 생각하는 무언가를 끝까지 만들어내고자 하는 열정과 끈기가 필요하다. 이런 요소들이 엔지니어 특유의 속성이고 공대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기계에만 빠져 살던 엔지니어 출신 리더들이 집념과 끄기를 갖고 성공에 이르는 스토리는 진로를 고민하거나 자신의 삶을 좀 더 다른 차원으로 옮기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잠재력 있는 청년들을 위한 지원 활동에도 열심이다.
“요즘 제일 관심이 가는 분야는 후배들을 위한 지원 활동이다. 나의 성공 경험을 후배들에게 어떻게 전달해 도움을 줄지 늘 고민하고 있다. 사실 그간 많은 노력과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지혜와 경험을 전달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내 성공이 특별한 이유는 매우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너무나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성공의 기본기를 가르쳐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일환으로 ‘인바디벤처센터’를 통해 창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사무실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 모교인 연세대 기계공학과 학생들이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참여하도록 돕고 있다.”
성공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요즘 창업하는 청년들을 보면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꿈을 실현하기보다 대박에 도전하려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세상에 대박은 없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가면 잭팟 터진 이야기를 수없이 들을 수 있지만, 도박으로 성공해 갑부가 된 사례는 찾기 힘들다. 진정 창업에 성공하고 싶다면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야 한다. 요즘 ‘집념’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구태의연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집념은 최근 젊은 층이 열광하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과 같은 가치다. 원하는 일에 집념과 끈기를 갖고, 너도나도 대박을 외치는 시대에 진정한 성공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