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미 인바디 대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
포브스코리아
체성분 분석기로 세계시장 1위를 차지한 헬스케어 기업 인바디(InBody)는 등장부터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간단하고 빠르게 체성분을 분석해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결과를 보여주는 진단 기기는 1990년대 후반 전국 곳곳에 있는 피트니스센터에 빠른 속도로 파고들었다. 인바디는 설립 2년 만에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벤처기업으로 선정됐고 2000년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이제 ‘인바디 검사’라는 표현은 체성분 분석 행위 자체를 통칭하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피트니스센터와 건강검진센터, 재활센터 등에서 인바디 체성분 분석기를 필수품처럼 구입하자 인바디에는 희비가 교차했다. 제품력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새도 없이 시장 포화 상태라는 평가가 나온 탓이다. 인바디의 향후 성장성에 대해 회의적 시각도 상당했다. 하지만 인바디는 의심 어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저변을 넓혔다. 현재 9개국에 해외법인을 두고 100여 개국에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기업으로 우뚝 섰다. 전체 매출에서 해외 수출 비중이 무려 70%에 이른다.
설립 후 현재까지 연평균 성장률 20%를 자랑하지만 주주총회가 열릴 때마다 나오는 단골 질문이 있다. ‘체성분 분석기 다음으로 글로벌 시장을 제패할 제품이 준비됐는가’라는 물음이다. 이에 대해 이라미(46) 신임 대표는 “체성분 분석기 시장은 아직도 초기 시장”이라며 “종합병원의 연구실과 중환자실, 직장 내 건강센터, 스포츠 선수 대상 피트니스센터, 약국, 군부대 등 인바디가 갈 곳은 무궁무진하다”며 “최근 개발된 웨어러블 제품과 건강관리 소프트웨어 등도 시장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4월 취임한 이 대표는 2003년 입사해 19년 만에 말단 직원에서 대표 자리에 올라선 입지전적 인물이다. 초고속 승진 비결에 대해 그는 “영업부서, 임상 연구소, 기획실, 해외법인 등을 거치며 회사에서 안 해본 일이 없다”며 “2012년 부사장에 올랐을 때 임신 9~10개월 차였다. 출산하러 병원에 들어가면서도 혹시나 결재 문서를 놓칠까 봐 노트북을 챙겼다”고 말했다. 현장 중심 경영과 특유의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신임 대표에게 인바디의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해 물었다.
자발적 해외 파견…현장에 답이 있다
서울대에서 식품영양학 학사, 보건학 석사를 취득한 이 대표가 2003년 당시 벤처기업에 불과했던 인바디에 입사한 계기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였다. 그는 “IMF 외환위기로 취업이 어렵던 시절 인바디에서 임상팀 연구원을 뽑고 있었다”며 “당시만 해도 인바디는 1년에 제품 10대를 판매한 사원을 올해의 최고 사원으로 우대해주던 회사였다”고 회고했다. 그동안의 소회를 묻자 “지금은 국내에서만 한 달에 450대를 판매하는 회사다”라며 “인바디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무슨 일이든 앞서서 성사 여부를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입사 초반엔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잦았다. 임상 연구소에 지원했는데 배정받은 곳은 영업부서였다. 내성적인 그가 낯선 이에게 제품 판매를 위해 말을 걸기는 쉽지 않았다. 이후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차기철 회장의 업무 보조 역할도 떠맡았다. 적재적소에 맞는 인재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 일만 마무리되면 그만둬야지”라며 스스로를 달랜 세월이 어느덧 20년이다. 퇴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는 “이대로 그만두기가 아까웠다”고 말했다.
“이 일만 끝나면 퇴사하겠노라 다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런데 일이 막바지에 다다르면 괜스레 뿌듯함과 성취감이 들어 그만둘 수가 없더군요. 누가 알아줘서 그런 건 아닙니다. 스스로 기분이 좋았어요. 특히 인바디는 분명 잘될 회사인데 이 성장과정에서 중도 하차한다는 게 아까웠습니다.”
그렇게 버틴 세월은 그에게 피와 살이 됐다. 부사장으로 영업을 총괄하게 되자 입사 초반 영업부서에서 흘렸던 식은땀이 큰 도움이 됐다. 차 회장 곁에서 업무를 보조했던 경험은 돌이켜보면 일종의 ‘경영 수업’이었다. 이 대표는 차 회장이 참석하는 모든 회의에 동석해 진행 상황을 지켜봤다. 경영진의 토론을 경청하고 회의 내용을 정리하며 경영과 관련한 간접경험을 탄탄하게 쌓을 수 있었다. 그는 “기적적으로 많이 배웠던 계기”였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해외법인을 관리하면서 본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일본법인에 문제가 생기자 직원을 파견하지 않고 자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일본으로 날아갔다. 일본법인을 3년간 직접 관리한 결과 매출이 2배가량 늘었다. 뾰족한 전략이나 인적 네트워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법인의 고충과 판매 대리점의 애로 사항을 듣는 데 집중했다”며 “판매를 독려하기 위한 설득작업은 후순위였다”고 말했다. 2018년 그는 유럽법인으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법인장으로 4년간 근무했다. 오랫동안 정체돼 있던 유럽 시장이었지만 이번에도 매출은 2.5배가량 올랐다.
“영업부서에서 오랫동안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 법인에서 전하는 말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어요. 제 지시도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았고요. 문제는 유럽의 노동자보호 제도가 워낙 강력해서 대리점에 문제가 생겨도 계약을 함부로 해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유럽 시장을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차 회장님께 직접 가서 해결하고 오겠다고 했어요. 현장의 소리를 직접 들어야 해결 방안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개선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장을 무시해선 안 됩니다.”
소프트웨어도 잘 만드는 인바디
인바디의 2021년 매출은 1378억원에 달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하 코로나) 기간에도 1000억원대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꾸준한 성장의 원동력에 대해 이 대표는 “뛰어난 제품력이다. 인바디는 성별이나 나이 등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신체를 양팔, 양다리, 몸통으로 구분해 주파수 6개를 이용해 정밀하게 측정한다”며 “오차범위 1.5% 이내 정확도는 업계에서 독보적일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인바디 본사 입구에는 차 회장이 손글씨로 쓴, ‘우리는 세계 최고의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인바디를 사용하면 신체의 기본적인 데이터를 매우 손쉽게 얻을 수 있어요.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나 애용하죠. 일반인뿐 아니라 엘리트스포츠 선수, 종합병원 중환자실 환자들도 쓰고 기업에선 직원 건강을 위해 사내에 인바디를 설치해요. 유럽법인장으로 일할 때 네덜란드의 한 종합병원에서 ‘당신들은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말하더군요. 경쟁사와 달리 인바디 제품은 코로나 기간에도 수요가 줄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는 인바디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표는 “한국만큼 질병 예방에 관심이 많은 국가가 없다”며 “치료·처방 위주인 해외 의료 시장이 코로나가 확산하자 예방·진단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는 근육 소모량이 많은 질병이라 평소 체성분 밸런스를 탄탄하게 유지한 사람은 코로나에 걸려도 잘 버틸 수 있다”며 “국내외 의료 시장이 인바디 필요성을 인지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인바디를 활용해 의학 연구를 진행하거나 인바디 검사 결과를 인용한 학회 논문은 5000여 편에 달한다.
이 대표는 인바디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데이터 기반 소프트웨어(웹·앱)를 꼽았다. 그는 “인바디 진단 결과를 토대로 건강 가이드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현재의 미션”이라며 “클라우드에 축적한 인바디 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건강관리 서비스를 연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원격 모니터링 등 전문 의료 시장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그는 “환자가 집에 있는 동안 어떤 상태였는지 의사가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
“인바디는 장비의 정확도가 완성된 상황입니다. 이제는 장비의 활용도에 중점을 둘 계획이에요. 고객 니즈에 맞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겁니다. 또 고도화된 의료기기로 전문 의료 시장에도 노크하는 중입니다. 세계 어디에나 있는 인바디가 궁극적인 목표입니다.”